수풀이 우거진 물 맑은 산 속에 개구리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개구리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삼대가 모여 사는 집도 있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사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부모 형제 없이 홀로 사는 이 개구리는 언제나 집에만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올챙이들은 그를 ‘고독한 개구리 삼촌’이라고 불렀고 어른 개구리들은 줄여서 ‘고독개구리’라 불렀습니다.
“고독한 개구리 삼촌은 답답하지 않을까? 우리랑 같이 놀면 좋을 텐데.”
“고독개구리가 집밖에 안 나온 지 얼마나 된 거죠? 밥은 제대로 먹고 지내는 걸까요?”
온 마을 개구리들이 그를 걱정했습니다.
허름한 고독개구리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면 언제나 “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사실 몇 해 전만 해도 고독개구리는 전혀 고독한 개구리가 아니었습니다.
부모 형제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에서 즐거운 날들을 보냈으니까요.
따뜻한 봄날, 긴 겨울잠을 자고 깨어난 가족들은 근처 옹달샘으로 나들이를 갔답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른, 상쾌한 봄날이었죠.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가족들이 옹달샘 위를 둥둥 떠다니며 일광욕을 즐기던 그 때,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개구리 가족을 덮치고 말았습니다.
고독개구리의 부모 형제는 순식간에 구렁이의 점심식사가 되고 말았답니다.
잠시 볼 일을 보러 바위틈으로 올라갔던 고독개구리만이 살아남아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고독개구리는 집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마을 개구리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고독개구리는 창문까지 모두 틀어막고 집에만 있었던 거예요.
마을 개구리들은 고독개구리가 도대체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햇빛을 보지도, 물가에 가지도 않아 그의 건강 상태가 몹시 나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고독개구리가 마을 개구리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한 얼굴로 말입니다.
놀란 개구리들은 고독개구리를 에워싸고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었습니다.
고독개구리는 대답 대신 마을 개구리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집 안에선 뭔가 독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에 개구리들은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고독개구리는 투명한 유리잔에 무언가를 담아 내왔습니다.
초대받은 개구리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독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상한 액체를 마셨습니다.
그래야 고독개구리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줄 것 같아서였죠.
참다못한 개구리 한 마리가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오래도록 햇빛도 보지 않고, 물가에도 가지 않은 네가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거지?
빨리 얘기를 해봐. 궁금해 죽겠어."
"하하하. 죽다니요? 그럼 안 되죠. 그리고 이제 그 술을 마셨으니 오래 살 거예요."
"술? 술이라고? 우리가 마신 게 술이라고?"
"맞아요. 뱀술이에요."
그렇습니다.
그 동안 고독개구리는 집에 틀어박혀 뱀을 잡을 함정을 만드는 데 열중했던 겁니다.
자신이 그토록 고독해진 건 모두 뱀 탓이라고 생각했던 고독개구리는
부모 형제의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어떻게 뱀을 잡을지를 궁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리함정’이라는 것을 발명해냈습니다.
뱀의 머리가 들어갈 만큼 입구는 좁고 바닥은 뱀이 똬리를 틀 정도로 넓적한 유리병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개구리들이 모든 잠든 한밤중에 고독개구리는 그 유리함정을 뱀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묻어두었습니다.
물론 병 입구는 풀로 살짝 덮어두어 뱀들이 빠질 수 있게 해 두었고요.
“정말 네가 뱀을 잡았다고? 그걸 어떻게 믿어.”
“나도 못 믿겠어. 지금껏 개구리가 뱀을 잡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걸.”
개구리들은 웅성거리며 고독개구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고독개구리는 키 큰 장식장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는 수십 개의 유리함정이 있었고 하나 같이 뱀이 들어있었습니다.
“유리함정을 파묻은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뱀이 나타나길 기다렸어요.
뱀들은 함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저를 잡아먹을 생각만 하더군요.
그리고는 어김없이 함정에 빠졌어요. 어리석은 뱀들.”
고독개구리는 집으로 가져온 유리함정에 술을 부어 뱀술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 효과는 실로 대단했어요.
햇빛을 보지 않고 물가에도 가지 않아 삐쩍 말랐던 데다 허물까지 마구 벗겨져 볼품없었던 고독개구리는
피부도 촉촉하고 등에 있는 무늬도 더 화려해졌거든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건강해 보였어요.
유리함정이 아닌 맨손으로도 뱀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니까요.
동네 개구리들은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하다가
유리함정에 갇혀 술의 재료가 된 뱀들을 보며 통쾌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래, 뱀들이 우리 개구리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지.”
“이제 우리 개구리마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거야.
고독개구리, 넌 정말 위대한 일을 한 거야.
이제부터 너를 ‘개구리영웅’이라고 부를게.”
고독개구리는 한순간에 개구리마을의 영웅이 돼버렸습니다.
개구리마을에서는 더 이상 그를 ‘고독개구리’나 ‘고독한 개구리 삼촌’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를 마을의 대표로 뽑고, 그가 만든 유리함정을 온 산 곳곳에 묻었습니다.
이제 개구리 마을의 집집마다 뱀술이 담긴 유리함정들이 그득해졌습니다.
뱀술을 먹어 모두들 힘이 장사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뱀을 잡고 뱀술을 만들어 먹는데 신이 나 다른 일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개구리 수도 점점 더 늘어나 아주 풍요로운 마을처럼 보였습니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다른 개구리마을에도 퍼져나갔고,
전국을 돌며 이 산 저 산을 오르며 도를 닦는 것으로 유명한 ‘구도두꺼비’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구도두꺼비는 곧바로 개구리영웅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소. 그러나 모두 다 어리석은 짓이오.
지금이라도 유리함정을 거두어들이고 뱀술을 먹는 일도 그만 두시는 게 어떻겠소?”
“두꺼비가 어찌 개구리 심정을 알겠습니까.
두꺼비는 독도 있고 덩치도 크니 뱀에게 당하는 일이 드물죠. 하지만 우린 달라요.
그동안 뱀이 개구리에게 한 짓을 보고도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뱀 때문에 부모 형제를 모두 잃었단 말이에요.”
“그건 뱀들의 잘못이 아니지 않소? 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 하는 것이오?"
“참견은 그쯤 해 두시죠. 우리 마을이 평화로워진 건 다 그 유리함정과 뱀술 덕분이란 말입니다.
말 나온 김에 뱀술이나 한 잔 드셔보시겠습니까?”
구도두꺼비는 혀를 끌끌 차며 뱀술을 거절하고 개구리영웅의 집을 나왔습니다.
구도두꺼비가 떠난 며칠 뒤 마을의 한 개구리가 개구리영웅을 찾아왔습니다.
유리함정이 꽉 차도록 큰 구렁이를 잡았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말 몸통이 집채만 해. 지금 모든 주민들이 이 곳으로 그 유리함정을 끌어 오고 있어.
우리 마을을 풍요롭게 만든 개구리영웅에게 선물하려고 말이야."
정말 유리함정에 갇힌 구렁이는 몸집이 거대했습니다.
온 마을 개구리들이 힘을 합쳐 겨우 개구리영웅의 집에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개구리들은 친절하게 술까지 부어놓고 돌아갔습니다.
개구리영웅은 그 어느 때보다 흡족했습니다.
이제야 부모 형제의 원수를 다 갚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밤, 개구리영웅은 단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난 개구리영웅은 어제 잡은 거대한 구렁이로 담근 술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뱀은 여전히 유리함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뻥’소리가 나게 유리함정의 뚜껑을 열고 술을 떠올리려 했지만 술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어제 마을 개구리들이 유리함정의 끝까지 술을 채우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는데 말이죠.
의아해하고 있는 개구리영웅의 눈이 구렁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희한하게도 구렁이의 눈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개구리영웅의 눈앞에 구렁이의 벌린 입 속과 독이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가 보였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구렁이는 유리함정을 타고 올라와 개구리영웅을 한 입에 삼켰습니다.
'끄윽~'하고 긴 트림까지 뱉어냈습니다.
그러니까 어젯밤 마을 개구리들이 부은 술을 다 먹어치운 구렁이는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난 뒤 안주 먹듯 개구리영웅을 먹어치운 것입니다.
개구리영웅의 집을 빠져나와 마을에 들어선 구렁이는 눈앞에 차려진 뷔페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마을은 온통 개구리 천지였으니까요.
‘요즘 도통 개구리 보기가 힘들어졌다 했더니 여기 다 모여 살았군.’
구렁이는 온 마을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평화롭던 개구리 마을은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살아남은 개구리는 단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이 소식 또한 금방 퍼져나갔습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백두산에 오르던 구도두꺼비도 그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구도두꺼비는 긴 한숨을 뱉은 뒤 이런 말을 남기고 천지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것이 어찌 탓할 일이란 말인가. 그것이 자연인 것을.
자신들이 파리 잡아먹는 것은 당연히 여기면서 말이야. 오만한 개구리들이 제 명을 당겼군 그래.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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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_행복에 대한 염원은 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8]
自作_안개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