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자꾸 바닥을 내려다본다.
관람차 바닥에 나자빠지게 만들었던,
발톱부터 사타구니까지 호스키스핀이 꽂히는 것 같은 아찔한 저릿함은 오간 데 없이
그 날 아침, 백지 씨와 밤새 질펀하게 대한민국 31세 여성 둘의 찌질한 삶에 대해 얘기하다
그녀의 집에서 쓰러져 잠들고 출근할 놈은 다 출근해 헐렁해진 신림 9동의 환한 골목길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 날 아침,
앞동인 104동에서 뛰어내린 고시생의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혀 수박처럼 터졌을 때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됐을 때의 시시함을 자꾸 되새기는 게 습관이 돼 버렸다.
비명이나 지르고 말뿐인 타인들의 공간에서,
핏줄의 찐득한 연민 한 번 못 받을 그 자리에서 생을 마치게 했던 성게 같은 절망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베란다가 아닌 엘리베이터 앞 유리창으로 뛰어내려 하고 널린 화단 흙 말고
만만치 않은 세상 같은 콘크리트에 머리를 쳐박고 기억과 의지를 지울 결심을 한 지점은 어디일까.
내막을 모르는 그의 절박함을 떠올릴 때 우주의 시간, 자연의 섭리 같은 건 머나먼 개소리만도 못하다.
우주의 시간과 자연의 섭리를 떠올렸다면 그가 뛰어내렸을 리 없지만 그렇게 저질러진 일 앞에서
우주의 시간과 자연의 섭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바늘 같은 순간을 이기지 못한 자에게는 우주의 시간과 자연의 섭리의 거대함은 종이로 된 우산일까.
가소로운 포트폴리오 하나 달랑 남긴 6년이라는 시간과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주제와
기워도 못 쓸 것 같은 금전과 비관 밖에 없으니 바람을 못 잡는 손바닥의 골들이 깊어보인다.
인간이 자의로 저지르는 슬픈 결말을 염두에 두고
나는 과거의 내 삶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차근차근 되짚어 오류를 수정하려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찬물과 더운물에 양발을 한쪽씩 담그고 있는 것처럼 어느 것도 온전히 믿기지 않지만 결국 살기 위함이다.
살면서 죽을 걸 보험처럼 염두에 두는 건 흡연처럼 나쁜 습관이다.
어젯밤 <스파이더맨3>를 보면서 두세번쯤 나와버리고 싶었다.
초고층빌딩에서 지상으로 떨어질 위기에 있는 아가씨들의 눈은 얼굴 근육과는 무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엉덩이 라인처럼 볼록볼록 줄 타고 나타날 걸 뻔히 알기 때문이라 피부에 나쁜 절망 따윈 하지 않는 걸까.
손쉽게 따는 청량음료 캔처럼 당장에는 시원하지만 남는 건 '거~억'하는 부대낌 뿐이라
가뜩이나 담배를 끊으려는 내게 힘을 주긴 했다.
담배 한 대의 위로는 스파이더맨의 등장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원인 해결은 없고 끝간 데까지 가면 짜파게티 CM송처럼 '짜란짜란짜'하고 등장해 주는 일이 스크린 말고 어디에서 있을까.
타인은 구원이 될 수도 없고 목적이 돼서도 안 되고 수단으로는 젬병이다.
일회적인 면피는 화려할수록 위험하다.
도망가려 하지 말고 모든 걸 살아내야 한다.
살아서 겪자!
어제 영화관에서 떠올라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겼다.
언제나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살아가고 마는 나를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처절한 인정.
다행히 나는 아직 그 일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아직 울 만큼은 아닌 건지 울었다간 정말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해선지 모르겠지만
참는 것도 아닌데 울지 않고 있다.
조금만 더 현명하고 영리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지렁이똥처럼 여기저기 산이 되긴 했다.
내 선택이 잘못됐음을 알리는 구토 같은 결론들을 보면 작은 것 하나도 결정내릴 수가 없다.
나를 믿을 수 있는 작은 사건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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