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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수확이라 꼽을만한 몇 가지 것들이다.
세이, 택시를 몰아도 될 듯
부산에 있을 때는 잘 몰랐다. 내가 길눈이 밝다는 것을.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내가 길을 잘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취재를 나가면 주로 초행인 경우가 많았는데, GPS만큼은 못 해도 잘 찾는 편이었다.
어디를 가든 머리 윗쪽에 말풍선처럼 지도가 그려지고 현위치를 점처럼 찍어보는 것이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마구 불안해지는 거다.
그래서 지하철을 싫어한다.
도당체 지금 어느 동네 밑을 어느 방향으로 지나가는지 가늠이 안될 때가 많아서.
이번 일본여행은 dada의 표현을 빌자면 '떠남'이라는 순수한 목적 아래
무모할 정도로 사전조사 따위를 하지 않았다.
<일본 100배 즐기기>라는 책 한 권 달랑 사 들고 갔다.
그런데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그 책이 상세한 편이긴 했지만...
잠시만 생각하면 여기가 어디메쯤인가를 금방 알아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 길찾기에 소질이 있구나.
불끈 택시를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 잊지 못할 것이오, 당신의 다테마에를...
사찌꼬. 악몽의 신쥬꾸에서 지도를 찬찬히 보려고 어느 골목 입구에 서 있을 때였다.
갑자기 웬 여인이 다가와
"Are you Korean or Chinese?" 하고 물어왔다.
같은 한국인인 줄 알고 얼렁 "Korean!"하고 외쳤다.
그러더니 웬 걸, 어디로 가냐고 영어로 물어왔다.
JR 신쥬꾸역에 가려고 한다고 하니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저기요, 저 안 물어봤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굳이?
그냥 가르쳐주는대로 놔 두자.
참참, 그녀 옆에는 잘 생긴 서양남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처음에는 여기서 두 블럭 고 스트레이트하다가 턴 라이트하라 어쩌라 하면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걷기 시작했다.
'그 쪽으로 가는 길이었구나' 하면서 다다와 나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우리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자기 아파트먼트가 있고 집으로 가는 길었다고 함)
그 때부터 사찌꼬와 대화를 했다.
다다는 그 서양남과 나란히 대화를 하고.
사찌꼬는 잘생긴 서양남(미국인 남편이라고 함)에게서 영어를 배운 모양인지 일본인치고 영어를 무지 잘하는 편이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커피, 아트, 비어 따위의 간단한 영어단어도 안 통했다. 꼬히, 아르또, 비루라고 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더라. 철자를 불러줘도 모르더라. 아마 알파벳도 자기네식 발음으로 배우는 모양. 환장할 영어다)
여기서 잠깐, 그녀와의 대화 한 토막!
사찌꼬 : 일본 여행 어떠냐?
세이 : 별로다
사찌꼬 : 왜 별로냐? 비싸서?
세이 : 비싸다. 심히
사찌꼬 : 진짜 비싸긴 비싸다
세이 : 하꼬네 가려다가 교통비가 너무 비싸서 못 갔다. 진짜 다 비싸다
사찌꼬 : 나한테는 싸지만 당신한테는 비싼 거다
세이 : 뎅~
처음에 일본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는 자기가 꺼내놓고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자기한테는 안 비싸지만 한국에서 온 당신에게는 비싼 거다'였다.
들을 때는 몰랐는데 숙소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빠졌다.
갑자기 진지해졌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니 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대략 15분 정도를 걸어 역에 도착했다.
역에 도착하자 잘생긴 사찌꼬의 미국인 남편이 자동승차권발매기에 1000엔을 넣더니 표 2장을 끊어와 다다와 내게 내민다.
아니, 이럴 것까지야.
우리 그렇게 가난하지 않은데... 뭐, 고맙긴 하지만... 왠지 가난한 애 취급하는 것이 영...
근데 또 갑자기 사찌꼬, 우리가 들어간 개찰구로 따라 들어온다.
아니, 진짜 이럴 것까지야.
우리가 타야 할 플랫폼 입구까지 데려다 주고서야 돌아선다.
고마움에 딱 2장 있던 'say hello' 스티커를 주며 그게 내 이름이라고 말한다.
"Your name is 'Hello'?" 푸하하하하하하하
"I don't forget your kindness"라고 말했지만
그 친절 사실은 불편했다는 말이 나으 진심이다.
일본인들에게는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것이 있다고 책에서 보았다.
진심과 진심 말고 겉으로 하는 진심인 척 하는 가짜 같은 거라고 하던데
내가 그걸 본 것 같았다. 나도 그걸 보여준 것 같군. "SameSame"
김치만 담글 줄 알면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
일본에서 마지막 밤, 다다와 조촐하게 술 한잔을 걸쳤다.
맥주 안주로 김치를 집어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김치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외국에서는 절대 못 살 거야'라고 생각하던 내게는 획기적인 사고의 진화(?)이다.
엄마한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외국에도 젓갈이 팔아야 할 텐데. 황새기젓이랑 멸치젓이랑.
일생에 한번이면 족하다
일정이 빠듯하여 못 가본 곳들이 많았다.
그걸 위로하느라 그랬는지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일생에 한번이면 족한 것들이 있다'
다시 일본에 오게 됐을 때 보면 되는 거잖아.
두 번 볼 필요까지 있을까? 그 때 볼 것들도 남겨둬야지.
아쉬운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한번이면 족한 것들, 그 이외에도 참 많지...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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