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칭구, dudans!
이 놈의 가장 큰 특기는 한번씩
짧지만 파장이 큰, 충격적인 멘트를 날린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파장이 컸던 멘트는 "유치하다"
한동안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고 나면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귓전에서 울려퍼지곤 했다.
유령처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다.
유치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야 했다.
극복하지 못할 걸 알게 되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철길 위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도 피하지 않고 양팔을 하늘 향해 쫙 펴 들고 득음한 사람처럼 큰 소리로)
"나 계속 유치할래~"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상적인 멘트는 "그래가?"
서울말로 굳이 풀자면, "그래서?" 정도.
뭔가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말을 찾고 있을 때
턱을 받쳐들고 깜찍한 표정으로
'그래서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어? 빨리 말해봐~'가 아니라
다 산 것 같은, 깨우침을 주려는 도사같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던지는 멘트인데,
세 번 이상 들으면 말을 하는 도중에
'그래, 내가 지금 이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에 빠져들고
더 이상 말하고 싶은 의욕도 안 생기고, 심지어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는 진귀한 체험을 하게 된다.
(자살바위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의 암울한 표정으로 한숨 한 번 뱉고)
"그래, 이렇게 살아서 뭐 하는 거지? 죽자~"
결국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고? 뭐 그냥 그랬다는 거지. 우물쭈물...
dudans가 이 말을 즐겨 하는 한동안 내가 이 말을 왜 하고 있는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그러고 보니 여기는 왜 왔는지^^ 자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은 스스로 "그래가"를 남발하며 중언부언하고 다녔다.
그리고 어젯밤, 이 놈이 또 굉장한 멘트를 날렸다.
껌 뱉듯이 감정이라고는 없는 목소리로
"니 홈페이지 재미없다"고 했다.
홈피 주인이 사는 게 재미없으니까 홈피가 재미없지... 라고 대꾸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여기가 무슨 롯데월드도 아니고 재미는 무슨... 없으면 말아라~
입장료도 꽁짜고, 꼴에 칭군데 재미 없어도 참아봐라, 이 씨뎅아~
사는 게 재미 없다고 안 사냐? 홈피 닫으랴? 어쩌라고?
아, 이래도 사실 기분이 안 풀린다.
한동안 귀에서 맴맴거릴 게 뻔하다.
"재.미.없.다"
그래도 한번씩 던져주는 그 놈의 멘트는 화두가 되곤 한다.
고마운 놈이다. (엄지로 검지 윗부분의 살점을 살짝 집으며) 어 리를!
그 놈은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
술 먹고 같이 개 되고, 술값한다고 입간판도 부시고, 다음날 사우나 가서 땀도 빼고.
그래가? 다시 술 먹고 개 되고 부시고 땀 빼고...
그래가? 다시 술 먹고 개 되고 부시고 각자 땀 빼고...
그래가?
나는 유치하고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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