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울한 생일은 난생 처음이다.
물론 날씨도 일조한 바가 있지만. 그 주 내내 비가 내렸고, 당일에도 비가 내렸다.
어젯밤 두 잔 먹고 써서 못 먹겠다고 책장에 꽂아둔 천국을 먹었다. 술 이름에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기분은 바닥에 착 가라앉아 있었다.
(천국 후기 - 쓰다. 알고 보니 '국화 국'자였다)
천국을 먹으면서 곰곰히 생각에 잠기려 했으나 술기운이 스물스물 올라 쓰러져 자고 싶었다.지만 원인을 밝혀내려는 굳은 의지를 불살라.
의외로 답은 간단히 떨어졌다. 사실은 늘 생각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씹팔살이 갖추어야 할 것들을 나는 갖추고 있지 않다. 이것이 이유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계기가 없다며 깨닫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지.
일... 나는 확실히 글을 쓰고 벌어먹고 살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글쓰기에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 마음을 움직이려던 시도는 늘 실패했고, 글쓰기가 어쩌다 내 밥줄이 되었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때가 있다. 기자가 갖추어야 할 것은 필력도 필력이지만 섭외력, 정보수집능력, 폭넓은 대인관계 등등이 있는데, 그 모든 분야에서도 뛰어나지 않다.
다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겨우 밥 벌어 살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면 다행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보이지 않는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고, 이 길을 떠나지 않은 이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무언가 특출난 것을 갖추지 않으면 남들처럼 그렇게 스러져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비장의 무기는 무엇인가? 가능성을 온갖 것에까지 다 열어두고 보아도 그닥 쓸만한 것이 없다. 차라리 빌붙기에 대한 소질을 더욱 길러 끈덕지게 빌어먹고 사는 것이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뭐, 삶을 '일과 사랑'이라는 상투적인 틀에 가두는 것이 우습지만, 글만큼이나 허접한 사고를 하고 있는 내게 언제나 이것들은 함께 따라온다. 사랑이 없다고 믿고 사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깨달았다. 나는 '꾸준히 사랑 받을' 자신이 없다는 것을. 사랑은 있지. 없긴... 있긴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사랑이 없다고 꼭꼭 믿고 싶었던 거지. 최사장처럼 '인생은 사랑이야'라고 말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랑은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한 거라는 걸 안다. 사랑을 안하고 살다 보니 그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향해 미소를 날리면 '저 미소가 무표정으로 변하면 어쩔까?' 하고 미리부터 걱정을 하게 될 것이고, 따뜻하게 잡아주던 손길이 언젠가 성난 몸부림 끝에 나를 한 대 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이고, 뜨겁던 마음이 대리석처럼 차가워지면, '아 시원해서 좋네' 할 수도 없고...
이루기도 전에 이루고 난 뒤의 상황들을 미리부터 걱정하고 있다. 우스운 줄 아는데 이 우스운 걸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일에 목숨 걸고 살고 싶지만, 앞서도 짚었지만 일에서도 두각을 못 보이는 터라...
어젯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이처럼 우울한 인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성공한 인생에는 대체로 터닝 포인트가 있다. 뭔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지금이 그 시기로 적절한 듯한데... 포인트는 포인트인데 도당체 어디로 터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뭔가 실력을 갖추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하지만, 나이만큼이나 견고해진 터라...
그래가? 방법은 있지만 하기가 싫다는 거다. 사실은 할 수 없다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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