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다... 지난 해 한창 장판과 합체하여 니나노~하며 백수생활의 절정으로 치닫던 때...
디스켓에 저장되어 있던 한달치 일기가 고스란히 날라갔다. 한창 글발이 오르던 때의 일기라 친히 디스켓에 저장(나만 쓰는 컴퓨터가 아니었으므로 유출을 우려하여)했었다.
그런데 그만! 이 미친 디스켓의 문서들이 열리지를 않는 것이다. 당황한 나는 PC방에도 가 보고, 나지트에도 가 보았지만 어떤 컴퓨터에서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 디스켓은 내 손에 갈갈이 찢기고 밟히고 부서졌다. 그 날 이후...
나는 모든 일기를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컴퓨터를 믿지 말자고...
그리고 어제... 부팅이 안돼서 용산의 한 가게에 수리를 맡겼던 컴퓨터가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홍홍거리며 얼른 부팅을 시켜봤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윈도우 XP가 깔려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것은 적중했다.
나으 모든 데이타가 깜쪽같이 사라졌다. 밀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나으 흥분은 지금도 가시지를 않고 있다. 컴퓨터를 수리해 달라고 했는데, 포맷을 해 놓고도 일언반구 없었던 그 가게에 대한 분노도 분노지만...
더 크게 다가온 건 컴퓨터의 존재였다.
도대체가 왜 '필요'에 의한 물건이 늘 더 많은 '필요'를 생산해 내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폭발하려고 했다.
내게 컴퓨터는 한글문서의 작성과 보관을 위해 필요했고, 그래서 100만원을 넘게 주고 샀다. 그랬으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지, 뻑하면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관리를 원하니...
이게 무슨 '편리'인가 말이다.
쓸데없는 필요만을 생산해 내고, 스트레스만 가중시키고 제 역할을 잊은 정도가 아니라 역행하고 있으니... 제기랄 삼백만 스푼이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괴물 같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를 산산이 박살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기계와 관련되었던 안 좋은 기억들이 귀신처럼 되살아나 분노로 열이 올랐다.
박팀장님은 내게 컴퓨터에 대한 지식을 좀 가지라고 했지만... 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편리'가 목적인데 무엇때문에 그 편리를 위해 또 다른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하나.
이 시건방진 기계들. 엿먹으라는 듯이 대드는 기계들.
언젠가는 진짜 이것들이 똘똘 뭉쳐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랑 싸우자고 덤벼들지도 모른다.
제 주인의 연말을 개떡같이 만들어 놓고도 미안해 하기는 커녕 데이터 복구 비용으로 수십만원을 치르게 만들지도 모른다.
새로 박은 금니로 야금야금 씹어서 지네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이면 이 분이 좀 풀리려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허허허허허 드라마 시나리오 한 편과 창작시 세 편, 지난 몇 달간 찍었던 수백장의 사진들, 프린트해 놓지 않은 최근의 일기들, 대학교 때 썼던 각종 리포트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서들...
나는 이제 어떤 문서도 저장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제 타자기다! 비싸고 덩치 큰, 호감가지 않는 인상의, 그리고 무지하게 시건방진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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