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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그게 5년 전이지 아마.
어번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Wolf_We Obey the Logic of Fun>가 휴간(?)에 들어감과 동시에
세이의 경제활동은 중단됐고, 경제력은 무력해졌다.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걸 고맙게 여겼을 6개월을 꾸역꾸역 보내고 나니
내키지 않는 것이 역력한 표정으로 편집장님이 다시 나를 부르셨다.
모 증권사 멤버십 매거진을 맡기셨다.
사원은 나, 단 한명뿐이었기 때문에 편집장님이 안 하시면 내가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갑님께서 메인 인터뷰이로 연극배우 박정자 선생님을 원하셨다.
편집장님이 (박정자 선생님과 친하다고 소문이 날대로 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내가 머릿속을 피똥으로 채우며 보낸 길고 긴 시간들이
편집장님의 '용건만 간단히' 전한 전화 한 통화에 사라졌다.
인터뷰를 위해 나는 <연극배우 박정자>라는 책을 읽었고 쥐어짜낸 질문 리스트는 A4 한 장을 거뜬히 채웠다.
뿌듯한 표정으로 질문지를 내려다보며 급한 목소리로 내일을 불러댔다.
"Tomorrow, Come On! Hurry Up!"
그러나 또 언제나 그렇듯 복병은 이름을 배신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기자회견 식으로 진행된 인터뷰(?)에는 보도 듣도 못한 매체와
유명한 연극 제목과 동일한 제호의 잘 나가는 매체까지 해서 수많은 기자들이 나와있었다.
기자가 있으면 포토그래퍼도 있다.
포토그래퍼는 종종 부사수를 대동한다.
그러니 관객이 없음에도 극장이 가득 찼다.
'꼴랑' 질문 두 개를 하고 나온 나는 낯선 대학로의 낯선 바에 들어가 담배를 안주 삼아 맥주를 벌컥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울.었.다.
내 첫 인터뷰 기사가 이렇게 요절하는구나.
다음날,
밟혀야 생의 의욕을 느끼는 나답게 인터뷰 모음집을 샀다.
아무도 기대한 건 아니었을 텐데 망치고 싶지 않은 간절한 욕망이 그 책을 열게 했다.
박정자 선생님을 비롯해 숱한 문화예술인들이 한 남자의 가슴을 거치니 '발견'이라는 게 됐다.
부활, 재창조, 발굴 이 모두의 어떤 요소들이 다 들어있는데 발견이 제일 가까운 표현인 것 같아 선택했다.
나는 왜 사람들을 정면에서만 봤을까.
인간은 입체인데.
그러니까 옆모습 뒷모습 위에서 본 모습 앉은 모습 누운 모습 엎드린 모습 모습 모습 모습 모습들이 있는데 난 왜?
게다가 그의 표현은 참으로 낯.설.었.다.
처음 맛보는 요리에 비유하자면 재료는 아는 건데 어떤 이름을 붙여도 꼭 들어맞지는 않을 것 같은
'유니크'하고 '스페셜'한 수식이 꿀로 된 강물처럼 비옥하게 넘쳐흘렀다.
마감이 목전이라 급하게 읽었지만 모든 표현들을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면 내 것이 될까 해서.
그럴리가.
그 책의 제목이 <해를 등지고 놀다>이고
그 책의 저자이자 좀 전까지 아까워서 밝히지 못한 3인칭의 '그'는 이.충.걸.이다.
내색은 안했지만 포크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현관문(누군가의 집들이 현장이었고 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을 열고
네 개의 눈이 정확히 핀을 맞췄을 때
17번의 점프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좋아? 니가 좋아하는 다른 누구랑 지금 여기 있는 이 사람을 마술처럼 퐁 바꿔줄 수 있는데 누구랑 바꿔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왼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오른손에 옮겨쥐고 수직으로 세워든 뒤
인중 끝에 꽂아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붙여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언니를 배웅해야 하는데도 현관에도 안 나갔다.
너무 행복하니까 죽을까 봐 걱정이 되더라.
돈 있는 사람들이 왜 한나라당 찍는 줄 조금 이해가 될 뻔했다가 말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 예전에는 기권했었는데 이제 동그라미 만땅 채워 투표함에 넣을 수 있다. 무효라고?
여튼 '결국, 마침내' 그를 만났다.
'Fortunately'라고 쓰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운이라고 하면 이 행복감이 조금 잘려나갈 것 같아서
그냥 담백하게 'Finally'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아 건방진 욕심이 생긴다.
* 오른쪽이 그다. 왼쪽이 그였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실망할라나. 그러지 마라. 그의 정면 또한 아까워서 안 보여주는 거다.
사실 초상권 얘기하시면 크게 배상을 해야할지도 모를 유명한 문화인이시니까. 모두들 아다시피 내 통장은 아사 직전이다.
만약 복병처럼 왼쪽에 있는 헨리끄가 초상권 어쩌고 하면 영어 못 알아듣는 척 할 거다. 본 게 있어서 금방 믿을 거다.
"헨리끄, 겨울에는 봉사해야 돼. 무명씨 여인네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는 건 좋은 일이야.
당신은 지붕 있는데 말고 어디든 돌아다녀야 해.
그게 봉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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