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자리를 오존층처럼 큰 구멍으로 느꼈을 때는 여동생의 결혼식과 작은 언니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베란다 창문값을 내라며 친척도 아니면서 명절 때마다 전 세입자가 들이닥쳤었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였다.
(쥐새끼들은 염탐에 능해. 5만원 먹고 떨어지길 잘 한 거야. 난 급하면 위아래가 없거든.)
형부나 매제가 '어머니'를, 어른을 어른답게 염두에 두지 않을 때다.
그 외에 아버지가 필요한 때는 없다.
그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나는 부성애를 믿지 않는다.
지어낸 거 아니었어?
위장한다고 안 보이나?
두 번 속나?
돈 벌어다준답시고 같잖은 공경 받을라고 거짓말한 거잖아.
빌어먹을 마초들이 부성애란 이름 아래 자행한 일들을 봐.
'주는 대로 처먹기'에는 시대가 너무 변했어.
당신들은 고장난 마을버스처럼 2차선을 점령하고 서버렸지만
당신들의 자식들은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50분만에 주파하고 있잖아.
아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컴퓨터처럼 매번 부팅할 때마다 날짜 설정이 2003년으로 돼 있는 거야?
부팅할 때마다 다시 설정하고 있는데, 진짜 귀찮거든.
스스로 고장 났으니까 스스로 AS 안하면 난 버려.
(아나바다고 재활용이고 무진장 좋아하는데 그것까지 못하게 하네.)
난 이해를 구해야 할 당사자가 이해를 구할 의사가 없다면 버려.
그러니 왜 고장이 났는지,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고칠 수는 있는 건지 스스로 찾아봐야잖아.
고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 운석처럼 제 의도가 아닌 양 점령한 도로에서 비껴서 줘야 하잖아.
KTX 지나가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땅 네 땅'도 아니지만 다니는 길에 그러고 서 있으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놓고 '나를 쳤네, 아이구 나 죽네, 저 년이 나를 밟고 지나갈 줄 몰랐네', 그러지 말란 말이야.
어쩌라고.
다른 시공간을 살았는데, 당신의 시공간은 머릿속에만 있어 아무리 배려와 이해로 무장하고 뛰어들어도 한계라는 게 있거든.
머릿속으로 이해한 만큼이라도 예우를 해 주겠다는데도 그도 못 참겠다면
누가 나가야 할까요?
부성애?
그런 거 안 바래.
나는 내가 보살피거든.
돈 벌어다주고 집 지어 테두리 만들어주는 거?
고마운 일이지.
근데 영속성도 없고 기한도 말해주지 않는 돈과 테두리, 그딴 거?
체육복도 미처 못 갈아입었는데 발신탄 쏘면 어쩌라고.
팬티만 입고 뛰어?
당신한테 중요한 그 체면 따위, 난 없어?
더 벗을수록 좋은 거야?
덕분에 대학도 다녔고 머리카락처럼 머릿속도 먹물 들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어.
구걸할 만큼은 아니라고.
내가 벌어 내가 쓸 수 있고 집도 구할 수 있거든.
'없어도 그만, 있으면 좋고'야.
'그대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니?
있으면 더 좋겠다는 거지, 없으면 못 살겠다는 게 아니거든.
그만 좀 하지.
믿지 않아.
그러니 당신은 나를 배신할 수 없어.
나는 부성애를 찾지 않는다고.
그 존재하지도 않는 걸 찾는다고 치자, 그걸 네가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줄 수 있다고 쳐.
내가 그걸 믿을 걸 같니?
진정은 믿음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다름이 존재의 이유인데 어쩌겠니?
그렇게 타고난 게 너고 이렇게 타고난 게 난데.
네가 나랑 같으면 네가 나지, 네가 너겠니?
그래, 이렇게 모르는 척 못 본 척 안 보이는 척 하고 살자.
시간, 그거 지나가고 나서 말로 풀면 며칠 안 되잖아.
마음 먹고 갈 때는 힘들지만, 가 보면 더디지만, 지나고 나면 '지난 시간' 밖에 더 되디?
알면서.
바쁜 거야?
게으른 거야?
설마 그 잘난 생각이 거기까지는 안 미치는 거야?
에라이, 공교육비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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