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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림10동에 사시는 박 경자 자자 쓰시는 분,
써리원이 된 장세이라는 딸년을 모시고 사시는 그 분은 단신이십니다."
우리 엄마는 키가 작으시다. 나보다.
160cm가 된다고 하셨나, 안 된다고 하셨나.
대학 친구들인 지은이와 윤영이는 160cm가 확실히 안 되는 아이들인데
엄마는 그녀들을 "내보다 짝은 가"라고 이르셨다.
키가 작다고 못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남편을 물리치는 것과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것 정도가 불편하긴 하다.
엄마는 키에 대해 불만을 가지시지 않는다.
그냥 평균 170cm인 네 딸년들이 외출 준비를 마치고 엄마 앞을 휘휘 지나다니면
"참 보기 좋다야. 키가 크니까 뭘 입하놔도 마 좋네"라고 하시며 본인의 눈을 더 빛내셨다.
지난 주에 para선배와 씨네큐브에서 <허니와 클로버>를 보기로 한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마침 전 직장에 사직서를 낸 날이기도 했다.
3호선을 타고 종로3가 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려고 했다.
갈아타러 가는 길에 플랜카드 하나 없이 옷 장사를 하는 분들이 계셨다.
한 할머니가 코트를 입고는 남편 앞에서 한 바퀴 휘 돌고 계셨다.
두 분 다 흡족해하시는 것이 역력했으나 내가 가격을 묻자 얼른 벗어서 내게 주셨다.
당신들은 '돈이 없어 못 산다'고 하시면서 돌아서면서 다시 돌아보시면서.
원래는 사십몇만원인데 특가세일로 팔만사천원에 판매하고 있단다.
내가 입어보니 너무 따뜻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나를 에워싸고 이거 얼마냐고 물으신다.
ㅋㅋㅋ 기분 좋다.
엄마에게는 외할머니의 유품 중 하나인 가우디 무스탕이 있다.
두 이모들이 선물한 건데 과한 사이즈에다 무게도 상당해 외할머니도 입으실 때마다 고역이었다고 하신 건데
엄마도 역시나 "따시긴 억수로 따신데 너무 무거바서 입을라다가 치아뿐다"고 하셨다.
내가 사 드린 건 사실 인조밍크다.
그게 좀 죄송했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문희 선생님이 모피 한 벌 샀다가
모피반대집회하는 사람들한테 계란 세례 당할 뻔하는 장면을 보고는 '실~' 웃으며 자위했다.
엄마에게 저 옷을 드리면서
"엄마, 내가 너무 늦게 샀제. 인자 겨울 다 가삐맀는데. 다음 겨울에 입어래이" 했다.
엄마는 하나도 안 늦었다고 하셨다.
"죽을 때까지 입을 낀데."
그리고
"니가 이거 사주니까 바로 날씨가 추버진다"고 하셨다.
난 역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뿐 아니라 온 신체가 다 알아야 한다고 보는 얄팍한 인간이다.
같잖으면 그러지 마시고 동의하면 당신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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