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평야 한가운데에서 자란 탓에 비가 오면 땅이 젖어 신발이고 바지고 흙탕물 자국이 선연히 남았다.
그 때는 질퍽질퍽한 게 싫었다.
스무한살인가 두살인가에 도시(?)에 나와 살았다.
다니던 대학 앞의 2층집으로 이사와서야 비가 와도 땅이 질퍽거리지 않은 마을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스물네살, 한결군에 대한 짝사랑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됐을 때,
그 전까지는 그리도 싫었던 비를 하염없이 바라볼 일이 있었다.
거실문을 열고 앉았는데 앞집 처마 끝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울고 싶었구나.
내 맘처럼 처마도 울고 싶었구나.
언제까지고 계속 울기만 할 것처럼 처마는 끊임없이 빗물을 똑똑거렸다.
그 때 훅 스쳤다.
비가 와야 울 수 있는 것들, 말 못하는 것들이 비를 핑계 삼아 우는구나.
말을 하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지나치게 물활론적이고 감정이입의 과잉이나 그 때는 마음 통하는 친구를 얻은 것만 같았다.
나 말고도 이렇게 울고 싶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큰 위로였다.
이후로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전 우주의 말 못하는 것들의 울음이 비라고 생각하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전에 몹시도 싫어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비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맞는 것도 좋다.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다 같이 울고
각자의 목소리지만 엇비슷한 소리를 내어 울고
각자의 크기가 다르겠지만 맞아도 아프지 않고.
아 비 많이 온다.
다들 운다.
깊은 목욕과 닮은 비.
눈물로 슬픔을 씻기고 세상을 씻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