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 영화제 취재를 했다.
취재랄 것도 없다.
나는 그녀와 그들의 패션만 보면 됐다.
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에 가려는데 경호원이 막고 나섰다.
뻔히 보이는 화장실 간판을 두고 돌아가야 할 거라고 말할 것이 또 뻔해 염증이 났다.
경호원은 "안됩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 돼죠?"
버벅대는 경호원. 건너편 경호원에게 물어본다. "화장실 어디로 가야 돼?"
화가 치밀었다. 모르면서 일단 막고 봤군.
맞은편 경호원도 모르겠다고 절레절레. 그들 중 한 사람이 더 높은 사람을 불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프레스 카드를 들어보여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당연히 내가 기자인 줄 아는 줄 알았다.
거기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기자이거나 포토그래퍼였고 대부분의 기자는 여성이었다.
더불어 나는 기자다운 외양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던지라.
"화장실 어디로 가면 되냐고요?"
"안 됩니다. 저리로 가면 안된다고요. 근데 어떻게 오셨어요?"
스토커 제압하듯 큰소리로 말하는 남자.
포토라인의 수많은 포토그래퍼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민망했다. 더욱이 목적지가 화장실이잖아.
"제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급하다고요)"
결국 선심 쓰듯 '그냥 가시게 해 드리는데 저희도 룰이라는 게 있으니까 지켜달라'는 말을 듣고서야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어이없어 비웃었더니 그 남자는 내 뒤통수에 대고 듣기 싫은 무슨 말인가를 했다. 여전히 큰소리로.
룰? 룰이라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보이는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게 사회적인 룰 아니냐고? 어?
당신이 내가 일반인인 줄 알았다고 쳐. 내가 프레스 카드 한 번 들여보여줄 만큼 기자로서의 자부심이 없다고 쳐.
그래도 당신 같으면 뭐 대단한 이유도 없고 그냥 레드카펫 너머에 있다고 가지 못하는 화장실을 안 가겠냐고? 급한데? 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1시간 반이 넘도록 나는 발만 보며 서 있었다.
눈을 들면 누군가 아까의 상황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기분 나쁜 눈길을 보낼 것이 두려웠다.
포토라인에 선 스타라는 사람들을 봐야 하는데 안 보고 그냥 조명에 연결된 전선만 발로 만졌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기자로서의 내 자신을 떳떳하게 생각하지 않구나.
자신이 없구나. 얇은 카드 한 번 들어올리면 됐을 걸.
처음부터 목에 걸어두기만 했어도 될 걸.
떳떳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군.
나 자신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이니 누군들.
다른 기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나는 그냥 아픈 허리만 짚었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울듯한 얼굴로 그냥 서 있었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강거렸는지.
집에 가고 싶다는, 이 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간절히 하면서.
그리고는 또 촬영이 끝나고 에피소드처럼 말로 털어내고 말면서.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난 여전히 숯기가 없구나.
왜 이런 일에 절망할까.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상황을 못 견디겠다.
상금으로 왜 천만원이나 받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악착같이 모아서 전세금으로 내놓고 달마다 수십만원을 내는 돈을 대박처럼 한 번에 손에 쥐는 일을 못 견디겠다.
뭐 이렇나.
왜 기자로 살고자 했을까.
이 일을 이제 그만 놓아야하나.
이것도 사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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